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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원의 러닝타임] 사랑과 축구에도 비자(visa)가 필요한가요?

기사승인 2018.05.11  16: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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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running time) : 영화와 드라마의 상영 길이를 시간으로 나타낸 단위.

축구 : 11명의 ‘뜀박질’이 만드는 한 편의 영화 혹은 일련의 드라마. [편집자 주]

*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Like Crazy)](2011)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사랑을 속삭이는 제이콥과 애나 / 사진: [라이크 크레이지] 스틸컷

미국 LA 소재 대학교에서 공부 중인 영국인 애나(펠리시티 존스 분)는 같은 수업을 듣는 미국인 제이콥(안톤 옐친 분)에 호감을 느끼고 쪽지를 남긴다. 둘은 이내 연인으로 발전해 열렬히 사랑하고, 여느 사랑이 그렇듯 위기를 맞는다. 졸업과 함께 애나의 학생 비자 만료가 임박한 것이다. 애나는 영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순간에 충실’하기로 결심한다. 제이콥과 크루즈에서 휴가를 보낸 애나는 이후 영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지만 입국을 거부당한다. 과거 학생 비자 만료 이력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애나와 제이콥은 비자 문제로 인해 영국과 미국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장거리 연애’ 초창기에는 서로 음성메시지도 남기고, 이메일도 쓰면서 사랑을 확인하지만 둘은 서서히 지쳐간다. 영국과 미국의 시차에 적응할수록 마음의 격차는 더욱 커져만 간다.

사진: pixabay

지난 2016년 6월 23일, 영국 국민 3,355만 명이 참여한 국민투표에서 1,742만 명(51.9%)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찬성하면서 '브렉시트(Brexit)'가 결정됐다. 영국은 오는 2019년 3월 24일까지 EU 측과 각종 협상을 벌인 뒤 EU를 떠날 예정이다.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유럽축구 팬들은 기존의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와 이별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EU 소속 외국인 선수들과의 이별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다 학생 비자가 만료돼 영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애나처럼,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 중인 EU 국가 출신 외국인 선수들 상당수가 ‘취업 비자’ 때문에 더 이상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지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프리미어리그에는 수많은 EU 국가 출신 외국인 선수들이 있다. 브렉시트 후 강화된 이민법이 EU 소속 외국인 선수들에게 적용되면, 기존에 워크퍼밋 없이 프리미어리그에 노동력을 제공한 EU 국가 출신 외국인 선수들도 워크퍼밋을 필수적으로 취득해야 한다.

▲ 정상급 기량을 보유한 스페인의 후안 마타와 세자르 아스필리쿠에타, 만약 현시점에서 브렉시트가 진행되면 두 선수는 취업 비자를 발급받지 못한다. / 사진: 맨유, 첼시 소셜미디어

문제는 이 워크퍼밋 취득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다는 것이다.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하려는 선수의 소속 국가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0위 이내에 들어야 하고, 해당 선수는 자국의 FIFA 랭킹에 따라 A매치에 30~75% 이상 출전해야 한다. 위 2가지 사항을 모두 충족해야 영국 외 타 국가 선수들이 워크퍼밋을 받을 수 있다. (단 일정 수준의 고액 이적료, 연봉을 기록한 선수는 예외적으로 취업 비자 발급 가능) 실력이 뛰어나도 국가대표로 뽑히기 어려운 FIFA 랭킹 상위권 국가의 선수들은 워크퍼밋을 취득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영국에서 제이콥이 아닌 사이먼(찰리 뷰리 분)과 사랑을 키우는 애나, 미국에서 애나가 아닌 샘(제니퍼 로렌스)과 사랑을 속삭이는 제이콥은 끝내 서로를 잊지 못하고 영국에서 재회한다. 재회의 순간에는 연애 초창기의 뜨거운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하지만 또다시 금방 헤어져야 하는 현실 앞에 둘의 사랑은 더욱 차갑게 식어간다. 애나와 제이콥은 결혼으로 서로를 옭아매려 하지만 한 번 더 비자 문제로 이별을 맞이한다.

▲ 제이콥이 애나와 헤어진 뒤 만난 샘 / 사진: [라이크 크레이지] 스틸컷

다가오는 외국인 선수들과의 이별을 막기 위해 프리미어리그도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프리미어리그 구단 측이 주목하는 부분은 “뛰어난 기술을 갖춘 고소득 직업 종사자들은 강화된 이민법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이민법 예외 조항에 축구선수들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럴 경우 EU 국가 출신 외국인 선수들이 기존처럼 워크퍼밋의 취득 없이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미어리그가 우려하는 또 다른 측면은 바로 수익 감소다. 현재 3분의 2 이상의 선수들이 외국인 선수로 이루어진 프리미어리그는 해외 중계권료로만 수조 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국인 선수들이 대거 이탈한다면 프리미어리그의 해외 중계권료 가치는 곤두박질할 것이 자명하다. 이미 브렉시트가 결정되면서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졌고,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이 이적시장에서 선수 영입을 위해 지출하는 이적료는 더욱 증가했다. 반대로 추후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에게 분배될 해외 중계권료는 파운드화의 가치 하락만큼 감소할 것이다.

부모님의 도움으로 비자 문제를 해결한 애나는 결국 제이콥이 있는 미국으로 향한다. 제이콥의 공방에 도착한 애나는 생각보다 남루한 그들의 보금자리에 살짝 실망하는 눈치이지만 과거 제이콥과의 추억을 앞세워 현실을 견뎌내는 듯 보인다. 영화는 제이콥과 함께 샤워를 하는 애나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며 마무리된다. 온수를 머금은 애나의 표정은 차디차다. 두려움과 덤덤함과 비장함 사이를 부유하는 낯빛이다. 애나와 제이콥의 두 눈은 서로의 어깨 위에서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본다.

▲ 제이콥을 바라보는 애나 / 사진: [라이크 크레이지] 스틸컷

[라이크 크레이지](2011)는 열린 결말이다. 엔딩 신의 애나의 표정을 보면 둘은 이내 또 이별을 결심할 것 같지만, 반대로 권태를 극복하고 다시 뜨겁게 사랑할 수도 있다. 전자는 새로운 사랑의 시작, 후자는 사랑의 새로운 시작. 어느 모로 보나 사랑은 계속되는 것이다.

프리미어리그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EU 소속 외국인 선수들과 이별하면서 해외에서의 인기, 중계권료, 유럽대항전에서의 성적이 동반 하락할 수 있다. 반대로 자국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들을 대체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경쟁력 강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축구선수들에게 이민법 예외 조항이 적용돼 기존과 별로 달라지는 점이 없을 수도 있다. 열린 결말. 한 가지 분명한 건 어떠한 결말이 현실이 되든 축구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이별을 '예감'하고 있는 이 세상 수많은 애나와 프리미어리그에게 사랑과 축구에 관한 격언을 보내며 마친다.

“모든 사랑은 다음에 오는 사랑에 의해 정복된다.” - 오비디우스

“폼(form)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class)는 영원하다.” - 빌 샹클리

정일원 기자 1one@beff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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