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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뮤직] ‘Born to lose, Lived to win’ 모터헤드

기사승인 2018.11.19  13: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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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미 킬미스터 / 사진: 모터헤드 공식 페이스북

[베프리포트=최진수 에디터] 어두운 조명이 걷히자, 베이스를 치며 담배를 문 장발의 사내가 걸어 나온다. 짧은 인사말과 함께 밴드 소개가 이어진다. “Good Evening! We are Motorhead, We play rock n roll!”. 곧바로 우렁찬 드럼소리와 함께 그들의 정규 7집 'Orgasmatron'의 수록곡 ‘Doctor Rock’이 흘러나온다. 필자와 모터헤드의 첫 만남이었다.


공연 영상은 2004년 발매된 모터헤드의 정규 17집 'Inferno' 투어 중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찍은 라이브 영상이었다. 밴드의 리더이자 팀의 보컬 및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던 레미 킬미스터는 당시 60살이라는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훌륭한 기량으로 공연장을 찾은 팬들을 열광시켰다.

모터헤드는 수많은 밴드들의 존경을 받는 밴드다. 대표적으로 메탈리카는 자신들이 모터헤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메탈리카의 드러머인 라스 울리히는 어렸을 적에 모터헤드의 팬클럽 회장을 맡을 정도로 열렬한 팬이었다. 특히 밴드의 리더인 레미 킬미스터는 수많은 록스타들의 롤모델이고 그의 모습을 보면서 록스타의 꿈을 키웠다는 가수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후 탄생한 스래시 메탈 장르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다름 아닌 모터헤드였다는 사실은 이미 업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모터헤드를 음미하기 위해선 밴드의 창시자이자 리더, 그리고 베이시스트인 레미 킬미스터란 사내부터 알아야 한다. 사실상 레미 킬미스터는 모터헤드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5년 그의 타계 이후 당시 모터헤드의 기타리스트 필 캠벨은 "레미가 모터헤드의 전부이기 때문에 그의 죽음으로 더 이상의 모터헤드 활동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많은 밴드가 멤버의 죽음 이후에도 새로운 멤버를 영입해 투어를 돌거나 트리뷰트 밴드로서 활동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레미 킬미스터가 모터헤드 내에서 차지했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레미 킬미스터는 1945년 12월 24일 영국 Staffordshire 주 Stoke-on-Trent에서 Ian Fraser Kilmister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가 생후 3개월이 되었을 때 이혼했다. 양육권을 가진 어머니는 이후 George Willis(당시 프로축구 선수)라는 사람과 재혼했는데, 레미 킬미스터는 새아버지의 집이 있는 웨일스 Bellench로 어머니와 함께 이주한다. 그는 해당지역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레미 킬미스터만이 유일한 영국 출신이었기에 학교생활이 녹록지 않았다고 자서전에서 회고한 바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유는 모르겠지만 ‘Lemmy’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레미 킬미스터에게는 인생 초창기 상당히 재미있는 이력이 있다. 그는 1967년 런던으로 이주했는데, 당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라는 그룹을 결성해 영국서 광풍을 일으켰던 지미 헨드릭스의 로드 매니저로 일한 것이다. 덕분에 그는 매일 밤 지미 헨드릭스가 공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공연이 끝나고 사석에서 비록 지미 헨드릭스와 친해지지는 못했지만 그가 회고하기를 지미는 상당히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덧붙여 그가 런던에 있을 때에는 야드버즈, 더 후 그리고 비틀즈와 같은 전설적인 밴드들이 한창 활동 중이었는데 이러한 밴드들의 공연을 실제로 봤다는 것은 그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저런 일을 겪고 난 뒤 레미 킬미스터는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위해 호크윈드라는 사이키델릭 록밴드에 들어간다. 당시 집 근처에 살던 마이클 ‘딕 믹’ 데이비스의 추천으로 가입했는데 둘은 ‘스피드’라는 암페타민(마약)이 계기가 되어 친해졌다고 한다. 호크윈드에 가입할 때 레미 킬미스터는 기타리스트 자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원래 기타리스트로서 음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가입하기 바로 직전에 밴드의 베이시스트가 갑자기 공석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베이스를 치게 되어 그것이 모터헤드 활동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첫 베이스는 베이시스트가 버리고 간 것을 사용했다고. 지금은 메탈 베이스계의 상징적인 존재 중 한 명이지만 시작은 정말로 초라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레미 킬미스터는 호크윈드로 4년 정도 활동했다. 가장 성공한 싱글인 ‘Silver Machine’에서는 그가 보컬을 맡았다. 아직까지 유튜브에서는 그의 호크윈드 활동 당시 공연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지금과는 창법이 상당히 다르다. 모터헤드에서 그는 트레이드마크인 특유의 가래 끓는 목소리로 모든 노래를 소화하지만 이전에는 비교적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호크윈드서 레미 킬미스터는 결국 해고가 되는데, 사연은 이렇다. 디트로이트 공연을 끝낸 뒤 캐나다 토론토로 향하던 중 캐나다 국경 근처 윈저라는 곳에서 그는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된다. 자서전에서 밝히길 "단속에 걸린 마약은 헤로인이 아니었지만 경찰은 헤로인이라고 우겼다"고. 나머지 호크윈드 멤버들은 그를 버리고 이동했으나 향후 공연을 마치기 위해 감옥에 있는 그를 보석금을 내고 토론토로 데려온다. 그러나 이후 멤버들은 그를 해고한다. 이유는 단순 마약 소지가 아니라 '잘못된' 마약을 소지했다는 것. 당시 레미 킬미스터만 유일하게 ‘스피드’ 복용자였고, 나머지 멤버들은 헤로인을 했기 때문이란다.

▲ 모터헤드의 마스코트 스내글투스(Snaggletooth) / 사진: 모터헤드 공식 페이스북

런던으로 돌아온 레미 킬미스터는 1975년 루카스 폭스(드럼), 래리 윌리스(기타)와 의기투합하여 초기 모터헤드를 결성한다. 모터헤드는 원래 호크윈드에 있을 당시 레미가 작곡한 가장 마지막 곡이었다. 밴드 이름을 이렇게 정한 이유는 모터헤드라는 단어가 미국식 슬랭으로 'Speedfreak(폭주족)'이라는 뜻으로 ‘스피드’ 애용자인 자신과도 뭔가 맞아떨어져서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향후 모터헤드의 음악이 소위 ‘달리는’ 음악을 지향한 것을 고려하면 밴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이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후 드러머가 필 테일러로 교체되었고, 기타리스트 역시 당시 필 테일러의 친구였던 에디 클라크로 바뀌면서 모터헤드의 전성기 라인업이 갖춰진다. 특히 필 테일러는 모터헤드의 음악과 가장 잘 어울리는 드러머이자 스래시 메탈 드럼의 기초를 정리했다고 평가된다. 스래시 메탈에서 쉴 새 없이 드럼을 때리는 연주 방식은 그의 특유의 연주 방식이었다.

▲ 모터헤드의 2기 라인업, (왼쪽부터) 미키 디, 필 캠벨, 레미 킬미스터 / 사진: 모터헤드 공식 페이스북

위 라인업은 2집인 'Overkill(1979)'부터 5집 'Ironfist(1982)' 그리고 라이브 앨범인 'No Sleep ‘til Hammersmith(1981)'까지 성공으로 이끌면서 모터헤드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후 에디 클라크부터 필 테일러까지 차례로 밴드를 나가면서 수년간 멤버 교체가 이루어졌다. 어떻게 보면 2기 라인업인 워즐(본명: 마이클 버스턴, 기타, 1984-1995), 필 캠벨(기타) 그리고 미키 디(드럼)는 전성기 라인업과 비교해서 앨범의 상업적 성공 면에서는 뒤지지만, 연주력만큼은 결코 밀리지 않는다. 드러머인 믹키 디는 레미가 직접 세계 최고의 드러머라고 소개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 전성기 라인업 이후에도 모터헤드는 ‘Orgasmatron’, ‘Eat the Rich’, ‘Doctor Rock’과 같은 명곡들을 뽑아냈다.

모터헤드의 음악은 레미 킬미스터의 베이스 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일반적인 베이시스트들과는 다르게 베이스를 기타처럼 코드를 잡고 연주한다. 그의 상징인 리켄버커 베이스와 ‘머더 원’이라는 이름의 마샬 앰프 조합은 처음에는 기타로 헷갈릴 정도로 음악 내에서 두드러진다. 게인을 잔뜩 올려치는 베이스는 단순히 베이스의 역할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리듬기타의 역할까지 병행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필 테일러의 멈추지 않는 드러밍과 에디 클라크의 속도감 있는 피킹 연주는 모두 모터헤드의 사운드를 정립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했다. 전성기 라인업 이후 합류한 멤버들도 비교적 큰 무리 없이 모터헤드 스타일에 적응하면서 밴드의 사운드는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단순히 ‘달리기’만 하는 음악이라는 인식과 달리, 모터헤드는 초기 로큰롤에 영향을 받은 음악도 선보인 적이 있다. 대표적으로 여자로만 구성된 영국 록밴드인 ‘Girlschool’과의 콜라보를 통해 ‘Please don’t touch’와 같이 대중지향적인 곡들도 내놓은 경험이 있다. 사실 레미 킬미스터는 버디 홀리와 같은 5, 60년대 로큰롤 가수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 뿌리를 잊지 않은 것이다.

모터헤드는 정규 앨범만 22장을 내놓았지만 그중에서도 초심자가 들어볼 만한 앨범은 3가지 정도 있다. 일단 첫 번째로 전성기의 시작을 알리는 'Overkill'. 단 2주 만에 완성했다는 이 앨범은 전성기 앨범들을 담당한 레코드 회사인 Bronze 레코드와 함께한 첫 앨범이다. 1979년 3월 24일 발매된 이 앨범은 투어 때 ‘Girlschool’이 오프닝 밴드로 참여했다. 영국에서만 6만 장이 팔렸으며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지금까지도 라이브 셋리스트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Overkill’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메탈리카가 커버해서 더욱 유명해진 ‘Damage Case’의 원곡도 들어있다.

▲ 정규 4집 'Ace of Spades' (왼쪽부터) 필 테일러, 레미 킬미스터, 에디 클라트 / 사진: 모터헤드 공식 페이스북

두 번째 추천 앨범은 바로 ‘Ace of Spades’이다. 모터헤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앨범이자 밴드의 상징과도 같은 앨범이다. 1980년 11월 8일에 발매되었으며 타이틀곡이자 불후의 명곡인 ‘Ace of Spades’가 수록되어 있다. 영국에서만 10만 장이 팔리면서 골드를 달성했고, 전성기 멤버들이 카우보이 옷을 입고 찍은 앨범 커버가 인상적인 앨범이다. 또한 ‘Love me like a Reptile’이나 ‘Chase is better than the catch’와 같은 곡들도 인기 곡들이니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마지막 추천 앨범은 ‘No Sleep ‘til Hammersmith’이다. 정규앨범이 아닌 라이브 앨범이지만 영국 앨범차트 1위를 달성하면서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모터헤드 앨범으로 평가받는다. 1981년 6월 27일 발매되었으며 1980년부터 1981년 라이브 실황을 담은 앨범이다. 1~3집의 히트곡들만 수록한 '알짜배기'로 모터헤드의 음악을 만끽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앨범이다. 모터헤드의 전성기 시절 연주력이 절정에 이른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2015년 12월 28일, 록밴드계에는 비보가 전해졌다. 모터헤드의 신화를 쓴 레미 킬미스터가 암으로 타계한 것이다. 그의 몸상태는 말년의 공연 모습을 보면 오래전부터 좋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록스타들의 추모가 이어졌고 언론사에는 추모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저택 대신 LA의 평범한 아파트에 기거한 레미 킬미스터는 투어가 없을 때는 자신이 자주 찾는 술집에 가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는 도로 위를 자신의 진정한 집으로 여기면서 음악에 인생을 바쳤다. 그것이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를 존경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의 묘지는 LA에 위치해 있는데 그의 묘비석에는 이러한 글귀가 새겨져 있다.

‘Born to lose, Lived to win’. 이 한마디는 그의 인생과 모터헤드의 정신을 보여주는 글귀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별 볼 일 없는 출신은 그가 평생 패배자로 살 것이라는 답을 내놓았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고, 우직하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으며, 결국 승리했다.

최진수 에디터 jinyel9494@beff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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