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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강 목사] 한국교회 교역자들의 손은 어떤 손인가?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5.10.06 08:28

   
▲ 오 수 강 목사
선거철만 되면 교계가 종교권력 자리를 놓고 혈투를 벌리며 약육 강식의 법칙으로 당선된 종교권력 자들은 승자승의 법칙으로 권력의 자리가 재편된다. 기독교계의 각 교단이나 교단의 연합회 수장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침노하는 자가 되어 선점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선거 현장에는 신앙과 믿음은 구호만 난무하고 그가 목회자 건 아니건 간에 권력의 정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암투는 치열하다.

이제부터 목회자들이라면 세상 권력이든 종교 권력이든 모두 내려 놓고 종교인 아니 기독교인 중에 지도자격인 교역자들은 진리의 말씀에 바로 서기 운동을 좀해야 할 것 같다. 세상이나 종교나 선거운동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점 자리에 앉으려하는 자들은 선거라는 마력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속의 구별 없이 선거꾼들은 허상을 만들어 서거에 취해 있는 순전한 교역자들에게 빌붙어 아첨꾼 노릇 아니면 상대의 정보를 팔아먹는 선거 매개 꾼 역할에 여념이 없다. 교회에 목회를 하고 있는 교역자들도 주일 설교 강단에서는 거룩하고 거룩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막상 강대상에서 내려와 세속적인 선거에 몰입하면 사람이 단번에 바뀌어 버린다.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는 체면 안면 몰수는 약과이고 심지어 상대의 약점을 파악해 아픈 곳을 송곳으로 쑤시듯이 상대를 흠집 내는데 혈안이다.

교역자들의 이러한 행태의 이중성을 누가 지적하며 고치도록 할 위인은 아무도 없다. 다 허물어져 내린 교역자의 위상, 성속을 구별 하지 않는 목회자들의 속성,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방편으로 여기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돈이 되는 일에는 눈먼 돈도 마다하지 않는 악습이 만연함이 기막힌 현실을 이해하려해도 할 수 없다. 이제는 사회에도 선거에 음식을 대접 받으면 음식 값의 50배의 벌금과 현금을 받으면 실형을 살아야 하는 엄격한 법 잣대가 적용되는 시대이다.

세상 사람들은 아직까지는 기독교 목회자의 세계는 신령하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일부 몰지각한 목회자들이 선거 때에 받는 금품과 향응은 같은 교역자끼리라는 이유로 아무 거리낌도 갖지 않는다. 그리고 공공연히 누구는 얼마 누구는 얼마인데 라는 말로 후보자의 향응과 금품에 대해 평가를 하는 풍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윤리와 도덕이 이미 강 건너 간 시대라 그런지 교역자들의 요구는 도에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돈이 없는 작은 교회나 개척 교회의 진짜 지도자들은 선거 때에 출마를 할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불의가 판을 치는 시대라고 하더라도 성직자라고 하는 반열에 속한 세상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밖은 자들이 속으로는 잇속을 챙기는 음흉함을 버리지 못한다면 한국교회의 위상은 다수가 아무리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건다고 할지라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고질적 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는 종교인들 속에 치러지는 자체 선거라 할지라도, 현실 법에서 정교분리의 치 외적인 이유로 세상 법에 적용되지 않는 현실을 바꾸어서라도 강력하게 처벌할 법 적용을 강구해야 한다. 제정분리의 교묘한 법의 맹점을 이용해 현실 법적용을 하면 모두 기소되어야 할 선거법 위반을 종교 내의 선거라는 정교분리 논리로 현실법의 적용을 고려치 않음은 형평성이 맞지 않다.

기독교든 타 종교든 이미 깊이 곪아 터져 치료시기를 넘긴 종교내의 선거도 일반법의 적용 대상을 삼아 대한민국 내에 치러지는 모든 공직, 사적 선거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감시와 감독을 공정하게 받게 함이 종교 선거의 부정을 막을 최선의 방법이라 볼 수도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불공정한 선거 제도는 고치려 하지 않고 국가 공권력의 탄압이라고 투쟁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교내의 선거의 부정과 불법을 막기 위한 최선책은 바로 공권력의 정당한 적용이다. 왜냐하면 종교권내에서 일어나는 선정 부정을 그대로 두거나 무시하고 넘어가면 나중 한국교회의 추락은 불 보듯 빤하다.

바른 선거제도를 실시하기위한 신앙적인 방편은 모든 교회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 말씀에 바로 선 목회자들은 부정을 하라고 떠밀어도 할 수 없는 신격을 소지 했다. 예수님의 손에 들려진 떡 하나가 제자들의 손에 쥐어졌을 때에 하나가 열두 개로 늘었다. 제자들의 손에서 백성들의 손에 들려 졌을 때에 떡 열두 개가 오천 개로 늘었다. 생명이 이어지는 생명 전이 현상이 일어났다. 부정은 믿음이 상실되고 신앙이 변질 될 때에 일어나는 마귀의 선물이다. 예수님의 생명을 전이 받은 교역자들은 결코 부정을 용납하지 않는다. 부정하지 않는 손에서 생명의 기적이 일어난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담임/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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